현대미술가 김홍록
김홍록은 회화에서 출발해 퍼포먼스, 사진, 영상, 설치로 작업의 범위를 넓혀 온 한국의 현대미술가다.
1985년생으로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005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해 회화를 전공했다.
대학 재학 중에는 개인 작업실을 마련해 학교 안팎에서 작업을 이어갔다. 사진과 영상 제작자, 모델, 배우 등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작업 방식과 관점을 접했다. 이 과정에서 같은 사건도 보는 사람의 위치와 경험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 관심을 갖게 됐다.
사실과 인식 사이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뒤, 대학 재학 중이던 2008년 《진정성 회복의 단초》라는 공통 제목 아래 작업을 전개하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작가의 감정이나 결론을 작품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인물과 사건, 행위가 놓인 상황을 제시하고 관객이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방식이었다.
여기서 ‘객관적 표현’은 작가의 관점이나 작품의 가치 지향을 지운다는 뜻이 아니다. 작품의 대상을 선택하고 상황을 구성하는 과정에는 작가의 판단이 개입된다. 김홍록이 지향한 객관성은 감정적 연출과 직접적인 설명을 줄이고, 대상과 상황을 관객에게 먼저 제시하는 태도에 가깝다.
진정성 회복의 단초 : 이닦기
2008년에 시작한 《진정성 회복의 단초 : 이닦기》는 많은 사람이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을 다양한 인물과 장소에 배치한 퍼포먼스와 사진 작업이다.
이닦기는 일반적으로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위생 행위다. 작가는 이 행동을 미술 작품 앞, 누드 드로잉 수업 중인 실기실과 영화관으로 옮겼다. 그러나 작업의 의미는 익숙한 행동을 낯선 장소에서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닦기는 작가와 작품, 학생과 창작 주체, 예술과 산업 사이의 관계를 한 장면에서 다시 살펴보게 하는 행위로 기능한다.

A Clue to the Recovery of Authenticity: Jongsik Choi
진정성 회복의 단초 : 최종식 / 람다 프린트, 2008 / 김홍록
최종식 작가의 작품 앞에서 두 사람이 이를 닦는 장면이다. 이 작업은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최종식 작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하는 일상적 행위를 작품과 한 화면에 담는다. 이를 통해 작품을 만든 사람과 그 작품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를 다시 살펴보게 한다.

A Clue to the Recovery of Authenticity: Nude Drawing Class
진정성 회복의 단초 : 누드 실기실 / 람다 프린트, 2008 / 김홍록
누드 드로잉 수업 중에 진행한 퍼포먼스다. 인체를 관찰하고 그리는 수업 중 김홍록은 이닦기라는 행동을 스스로 선택해 하나의 작업으로 전환했다.
학생과 작가라는 두 위치가 한 장면에 겹치며, 교육 과정 안에서도 자신의 판단으로 작업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창작 주체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 작업은 학생을 아직 작가가 되지 않은 예비적 존재로 한정하지 않고, 이미 스스로 작업을 만들고 수행하는 작가로 바라본다.

A Clue to the Recovery of Authenticity: Megabox
진정성 회복의 단초 : 메가박스 / 람다 프린트, 2008 / 김홍록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서서 이를 닦는 장면이다. 촬영을 위해 모인 참여자뿐 아니라 현장을 지나던 사람들에게도 참여를 요청했으며, 그중 일부가 즉석에서 함께 이를 닦으며 촬영에 참여했다.
영화는 제작, 배급, 상영이라는 산업적 체계를 통해 관객과 만난다. 미술 역시 창작과 전시, 유통과 거래의 구조 안에서 사회와 만난다.
이 작업은 영화와 미술이 모두 예술적 표현이면서 상업적 조건 속에 존재한다는 공통점을 한 화면에 놓는다. 영화의 산업성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미술은 시장과 분리된 순수한 영역으로만 보려는 태도를 되돌아보게 한다.
세 작업에서 이닦기는 일상적 행동을 낯선 장소로 옮기는 장치이자, 작가와 작품, 학생과 창작 주체, 예술과 산업 사이의 경계를 다시 묻는 행위가 된다.
진정성 회복의 단초 : 홍석천

A Clue to the Recovery of Authenticity: Seok-cheon Hong
진정성 회복의 단초 : 홍석천 / 람다 프린트, 120 × 120cm, 2011 / 김홍록
홍석천은 2000년 공개적으로 성 정체성을 밝힌 뒤 출연하던 방송 프로그램에서 잇달아 하차했다. 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 사회와 미디어의 시선이 변해 갔고, 홍석천은 방송에 복귀해 다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김홍록은 2011년 홍석천과 함께 이 작품을 제작했다.
이 작품은 홍석천 개인의 변화를 판단하기보다, 그를 바라보는 사회와 미디어의 시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게 한다. 인물의 정체성을 하나의 설명으로 규정하지 않고, 그를 둘러싼 인식의 변화를 작업의 대상으로 삼았다.
회화에서 확장된 매체

캔버스에 유채, 120 × 120cm, 2010 / 김홍록
김홍록은 사진과 퍼포먼스, 설치 작업으로 표현 범위를 넓히는 동안에도 회화 작업을 이어갔다. 회화를 포기하고 다른 매체로 옮겨간 것이 아니라, 작업이 다루는 대상과 방식에 따라 매체를 선택해왔다.

나무판에 에그 템페라, 2004 / 홍익대학교 입학 포트폴리오 작품 / 김홍록

자화상 / 캔버스에 유채, 2007 / 김홍록
2004년 에그 템페라 작품과 2007년 자화상, 2010년 유화는 김홍록의 작업이 회화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후의 사진·퍼포먼스·영상·설치는 회화와 단절된 결과라기보다 표현 방법이 확장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개인전
진정성 회복의 단초 : 부쏘 라울
진정성 회복의 단초 : 부쏘 라울 / 설치, 퍼포먼스, 영상, 사진, 텍스트 / 닷새간 퍼포먼스, 전시장 24시간 개방 / 2013 / 김홍록

《진정성 회복의 단초 : 부쏘 라울》은 1993년 뗏목을 타고 쿠바를 떠나 미국으로 향한 부쏘 가족의 경험을 다룬 김홍록의 첫 번째 개인전이다. 항해가 시작된 지 20년이 되는 2013년 3월 25일에 개막해 31일까지 열렸다.
가족과 함께 항해한 두 아이는 각각 네 살과 다섯 살이었으며, 라울 부쏘 주니어는 당시 다섯 살이었다. 가족의 회고에 따르면 라울 부쏘와 일행은 쿠바 연안경비대의 감시를 피해 맹그로브 숲에서 뗏목을 준비한 뒤 밤에 바다로 나갔다.
라울 부쏘 주니어는 차가운 바다에서 서로 몸을 기대어 온기를 나누었던 일과, 미국에 가면 정전 없이 텔레비전 만화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일을 기억했다. 항해 중 폭풍우를 만나 항로를 벗어난 가족은 닷새 동안 표류했고, 어선에 처음 발견된 뒤 미국 해안경비대에 구조됐다.
김홍록은 라울 부쏘 주니어를 만나 가족의 경험을 인터뷰했다. 20년이 지난 2013년에는 당시 뗏목과 같은 크기와 형태로 철, 알루미늄, 자전거 바퀴와 노를 사용해 뗏목을 제작하고 전시장에 설치했다.
김홍록과 성인이 된 라울 부쏘 주니어는 닷새 동안 뗏목 위에서 먹고 자며 생활했다. 당시 가족이 준비했던 식량을 참고해 스팸, 초콜릿, 물을 준비했다. 퍼포먼스가 이어지는 동안 전시장은 24시간 개방됐다.
관객은 완성된 작품을 멀리서 바라보는 데 머물지 않았다. 김홍록과 라울 부쏘 주니어가 생활하는 현장에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를 듣고 대화했으며, 이러한 만남도 퍼포먼스의 일부가 됐다.

미국 해안경비대 촬영 기록 영상 / 미국 플로리다 / 6분 50초 / 1993
전시장에는 1993년의 항해와 구조 과정을 담은 영상도 함께 상영됐다. 과거의 기록과 20년 뒤의 퍼포먼스가 같은 공간에 놓이면서, 관객은 실제 경험과 기억, 재현 사이의 관계를 함께 살펴보게 된다.
전시는 자유주의 체제의 미국과 사회주의 체제의 쿠바 사이의 단절을 대한민국과 북한의 관계와 나란히 놓았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나타난 체제의 차이를 한 작품 안에서 비교한 것이다.
작가는 1993년 사회주의 체제의 쿠바를 떠나 자유주의 체제의 미국으로 향한 부쏘 가족의 사건을 정확히 20년 뒤인 2013년 대한민국의 전시장에 다시 불러왔다. 미국과 쿠바의 체제 관계가 대한민국과 북한의 관계 속에서 다시 읽히면서, 서로 다른 두 시간과 장소의 가치와 상징이 교차한다.
부쏘 가족의 항해는 한 지역의 이주 경험을 넘어, 서로 다른 체제 사이에서 한 가족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선택한 사건으로 읽힌다. 이들의 경험은 개인의 선택과 이동을 보장하는 자유주의가 삶에서 갖는 가치와 소중함을 오늘의 관객에게 보여 준다.

퍼포먼스 중 뗏목 위에 앉은 라울 부쏘 주니어와 김홍록. 뒤편에는 부쏘 가족의 항해 기록문이 설치돼 있다.

뗏목, 인물 사진과 인터뷰 영상을 함께 구성한 전시장

뗏목 맞은편에 1993년 항해와 구조 기록 영상을 배치한 전시장

부쏘 가족과 항해 동행인의 인물 사진을 설치한 벽면

부쏘 가족의 항해 기록문을 설치한 벽면

이 퍼포먼스는 20년 전의 경험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시도가 아니었다. 제한된 공간과 시간, 음식이라는 조건을 통해 한 가족의 기억에 접근하고, 자유를 향한 선택의 의미를 오늘의 관객과 공유하려는 작업이었다.
부쏘 가족의 회고에 따르면, 1993년 미국에 도착해 처음 먹은 음식은 맥도날드였습니다. 김홍록과 라울 부쏘 주니어는 이 기억을 바탕으로 2013년 퍼포먼스 마지막 날 뗏목 위에서 맥도날드 음식을 먹었고, 이 경험은 같은 해 열린 김홍록의 두 번째 개인전 《진정성 회복의 단초 : 맥도날드》로 이어졌습니다.

2013년 3월 30일, 퍼포먼스 마지막 날 뗏목 위에서 맥도날드 음식을 먹는 김홍록과 라울 부쏘 주니어
두 번째 개인전
진정성 회복의 단초 : 맥도날드
진정성 회복의 단초 : 맥도날드 / 햄버거 포장지 위에 다이아몬드 더스트, 2013 / 김홍록
《진정성 회복의 단초 : 맥도날드》는 2013년에 열린 두 번째 개인전이다. 김홍록은 여러 도시에서 수집한 맥도날드 햄버거 포장지 위에 다이아몬드 더스트를 더했다.
부쏘 가족에게 맥도날드는 미국에 도착한 뒤 처음 접한 음식으로 기억되며, 작품 안에서는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사회를 처음 경험한 구체적인 기억으로 다뤄진다. 다른 관객에게는 일상적인 식사이거나 익숙한 세계적 브랜드일 수 있다. 같은 사물도 개인의 경험과 지역,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김홍록은 사용 후 버려지는 대량 생산 포장지 위에, 자본주의 시장에서 높은 가격과 교환 가치를 지닌 다이아몬드 더스트를 더했다. 작품에 사용한 다이아몬드 더스트는 가루가 아니라, 빛을 반사할 수 있는 여러 면을 지닌 아주 작은 천연 다이아몬드다.
버려지는 소비재와 보석이 한 평면에서 맞닿으며, 한 가족에게 자본주의의 시작점이 된 일상적인 소비의 흔적과 시장 가치가 고도로 응축된 대상이 연결된다. 자본주의를 글자나 표어로 직접 지시하지 않으면서도 두 재료의 관계가 그 안에서 형성되는 폭넓은 가치를 압축해 드러낸다.

진정성 회복의 단초 : 시카고, 미국 / 햄버거 포장지 위에 다이아몬드 더스트, 2013 / 김홍록

진정성 회복의 단초 : 호찌민, 베트남 / 햄버거 포장지 위에 다이아몬드 더스트, 2013 / 김홍록

진정성 회복의 단초 :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 햄버거 포장지 위에 다이아몬드 더스트, 2013 / 김홍록

당시 전시 자료에 따르면, 김홍록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20개국의 맥도날드 포장지를 수집했다. 각 작품에는 포장지가 수집된 도시와 국가의 이름이 붙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생산, 유통, 소비되는 하나의 세계적 브랜드의 흔적을 연작으로 모았다.

작가의 기록에 따르면, 포장지를 수집하기 위해 여러 국가의 한국 대사관 등에 협조를 요청했다. 최시원은 해외 팬들에게 포장지 수집 소식을 알렸고, 해외에 체류하던 사람들도 재료 수집에 참여했다.
수집 과정에서 일부 지역에서는 맥도날드 매장이 없다는 답변도 받았다고 기록했다. 이 기록은 당시 맥도날드의 진출 여부가 지역마다 달랐다는 사실도 연작에 포함한다.
이 연작에서 맥도날드는 부쏘 가족이 미국에서 처음 접한 음식이자, 일상적 소비와 세계적 생산, 유통을 통해 자본주의를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한 사물이다. 사용 후 버려지는 소비재와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보석을 함께 놓아 자본주의 안에서 서로 다른 가치가 형성되고 교환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버려질 포장지가 다이아몬드 더스트와 만나 미술 작품으로 전환되고 새로운 가치를 얻는 과정은 생산과 유통, 교환과 창조를 통해 가치가 만들어지고 확장되는 자본주의의 작동과 연결된다. 작품은 부쏘 가족이 미국에 도착한 뒤 경험한 자본주의를 통해 개인의 선택과 기회, 가치 창출의 가능성을 되짚는다.
연작의 일부는 2014년 로스앤젤레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LA Art Show에도 출품됐다.

세 번째 개인전
진정성 회복의 단초 : 군 성 노예
진정성 회복의 단초 : 군 성 노예 / 영상과 설치, 2015 / 김홍록
《진정성 회복의 단초 : 군 성 노예》는 2015년 7월 23일부터 8월 23일까지 열린 세 번째 개인전이다.
작가는 통용되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표현 대신 ‘군’, ‘성’, ‘노예’라는 단어를 전시 제목에 사용했다. 이를 통해 전시가 다루는 전쟁과 제도적 성폭력의 성격을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이 전시는 2015년 작품 제작 당시 생존해 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옥선, 이옥선, 김순옥, 김군자, 강일출 다섯 분의 모습을 영상, 사진과 설치로 기록했다.
세 차례의 개인전은 서로 다른 체제와 역사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첫 번째 전시는 한 가족의 선택과 이동을 통해 자유주의의 가치와 소중함을, 두 번째 전시는 서로 다른 사물의 결합을 통해 자본주의 안에서 형성되는 가치와 그 의미를 다뤘다. 세 번째 전시는 제국주의가 개인의 삶에 남긴 결과를 다섯 분의 얼굴과 시선으로 기록했다.

진정성 회복의 단초 : 박옥선
사진, 2015 / 김홍록

진정성 회복의 단초 : 이옥선
사진, 2015 / 김홍록
작품은 3 × 2m 크기의 흰 면 스크린에 다섯 분의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영상 속 다섯 분은 피해 경험을 재연하거나 별도의 대사를 말하지 않는다. 감정을 강조하는 동작을 최소화한 채 의자에 앉아 카메라를 바라본다. 관객은 실제 인물에 가까운 크기로 투사된 영상과 같은 눈높이에서 시선을 맞추게 된다.
작가의 작업 기록에 따르면, 촬영 당시 다섯 분 가운데 일부는 촬영이 언론 취재용인지, 영정 사진용인지 물었다. 미술 작품 제작을 위한 촬영이라는 설명을 들은 뒤 머리를 정돈하거나 옷을 갈아입고 카메라 앞에 앉은 분도 있었다.
이러한 구성은 다섯 분을 하나의 감정이나 ‘피해자다운 모습’으로 한정하지 않고, 박옥선, 이옥선, 김순옥, 김군자, 강일출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인으로 기록하려는 작업 방식의 일부였다.

진정성 회복의 단초 : 강일출
사진, 2015 / 김홍록

영상 속 고 김군자와 시선을 맞추는 관객
다섯 분이 촬영 때 앉았던 의자는 전시장에 함께 배치됐다. 영상 속 의자와 실제 의자가 서로 마주하도록 놓이면서 촬영 당시의 시간과 전시장의 시간이 연결됐다.
관객은 그 의자에 앉아 영상 속 인물과 같은 눈높이에서 시선을 맞출 수 있었다. 의자는 촬영에 참여한 다섯 분과 오늘의 관객을 연결하고 서로 대면하게 하는 매개가 됐다.
김군자는 1926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났다. 1942년 중국 지린성 훈춘의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가 해방 때까지 약 3년간 피해를 겪은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2007년에는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산하 청문회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2000년과 2006년에는 아름다운재단에 각각 5천만 원씩 총 1억 원을 기부해 ‘김군자할머니기금’의 출발점을 마련했다. 시민들의 기부가 더해진 이 기금은 2017년 7월까지 아동보호시설에서 퇴소한 대학생 약 250명의 학비를 지원했다.
김군자는 이러한 증언과 기부 활동으로 2014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2015년 제작된 작품에는 훈장을 단 모습도 기록돼 있다.
김군자는 2017년 7월 23일 별세했다.
작품 제작 이후 김순옥은 2018년 12월 5일, 박옥선은 2024년 9월 7일, 강일출은 2026년 3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진정성 회복의 단초 : 김군자
사진, 2015 / 김홍록
이 작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역사를 하나의 설명이나 감정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다섯 분의 이름과 얼굴, 시선을 오늘의 관객 앞에 놓고 제국주의와 전쟁이 개인의 삶에 남긴 결과를 바라보게 한다.
영상과 촬영 당시의 의자는 다섯 분을 직접 만날 수 없는 오늘의 관객도 이들의 모습을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도록 연결한다.
진정성, 단초, 회복
작품 제목에서 ‘진정성’은 작품 표면에 드러난 이미지나, 그 안에서 다루는 대상과 사건에 대한 익숙한 평가 너머에 있는 작업의 출발 이유와 본질을 가리킨다. 해석을 하나의 결론으로 고정하기보다, 서로 다른 시선과 상황 속에서도 그 근원에 가까이 다가갈 여지를 남긴다.
김홍록의 작업은 관객에게 정해진 해석을 제시하는 대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인물과 사물, 사건을 보여 주는 데 초점을 둔다. 그렇다고 작품의 관점이나 가치가 불분명한 것은 아니다. 작가는 자신이 중요하게 바라보는 대상을 선택하고 상황을 구성하며, 관객이 그 의미를 스스로 살펴보도록 한다.
작품 제목의 ‘단초’는 결론이 아니라 생각의 출발점이 되는 실마리를 뜻한다. 일상적인 행동, 한 사람의 얼굴, 한 가족의 기억, 사용 후 버려진 포장지처럼 구체적인 대상이 그 역할을 한다.
‘회복’은 과거의 상태로 완전히 돌아간다는 의미보다, 익숙하게 받아들여 온 사건과 사물, 인물을 다시 살펴보며 그 본질에 가까이 가려는 과정을 가리킨다.
《진정성 회복의 단초》 연작은 이를 닦는 일상적 행동에서 시작해 한 인물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 한 가족의 선택과 이동, 자유주의의 가치, 자본주의 안에서 형성되는 가치, 전쟁 피해자들의 얼굴로 이어졌다.
김홍록은 서로 다른 작업을 통해 관객이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대상을 다시 살펴보고, 자유와 선택, 가치와 인간의 존엄이 개인의 삶에서 갖는 의미를 생각하도록 이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