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진정성 회복의 단초 : 부쏘, 라울

1993년 당시 다섯 살이었던 라울 부쏘 주니어가 가족과 함께 쿠바를 떠나 미국으로 향했던 5일간의 항해를, 김홍록이 그와 함께 20년 뒤인 2013년에 재현한 전시입니다.

라울의 아버지는 두 친구와 함께 가족들을 데리고 쿠바를 탈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망그로브 숲에서 몰래 뗏목을 조립한 뒤 깊은 밤 바다로 나아갔고, 폭풍우 속에서 며칠 동안 표류했습니다. 떠난 지 5일째 되는 날 어선에 발견된 뒤 미국 해안경비대에 구조되었습니다.

김홍록은 라울 부쏘 주니어의 아버지와 두 친구가 만들었던 원래 뗏목과 같은 크기와 형태의 금속 뗏목을 만들어 전시장에 설치했습니다. 작가 김홍록과 라울 부쏘 주니어는 그 위에서 5일 동안 먹고 자며 20년 전의 항해를 다시 마주했습니다.

부쏘 가족의 회고에 따르면, 1993년 미국에 도착한 뒤 처음 먹은 음식은 맥도날드였습니다. 이를 되짚어 김홍록과 라울 부쏘 주니어도 2013년 퍼포먼스 마지막 날 뗏목 위에서 맥도날드 음식을 먹었고, 이 경험은 같은 해 열린 김홍록의 두 번째 개인전 《진정성 회복의 단초 : 맥도날드》로 이어졌습니다.

전시 기간2013년 3월 25일–31일
장소칼리파갤러리 · 서울
퍼포먼스 기간2013년 3월 25일 밤–30일 오전 11시
5일간 · 퍼포먼스 기간 전시장 24시간 개방

6인의 인물 사진작품

설치작품

진정성 회복의 단초 : 뗏목

철, 알루미늄, 자전거 바퀴, 노

영상작품과 기록영상

인터뷰와 미국 해안경비대 기록

김홍록의 인터뷰 영상작품라울 부쏘와 탈출 여정을 함께한 가족·친구들의 인터뷰
전시장에 영사된 미국 해안경비대 기록영상 1993년 미국 도착 당시 미국 해안경비대가 직접 기록한 구조·도착 영상

작가 김홍록이 여섯 사람과 나눈 인터뷰

나이·거주지·직업은 2013년 인터뷰 당시 기준이며, 답변은 인터뷰이의 경험과 견해를 담고 있습니다.

부쏘 가족의 아버지

라울 부쏘 Raul Bussot

2013년 인터뷰 당시 · 50세 ·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켄들(Kendall) · AT&T 기술자; 전화와 인터넷 설치

작가 김홍록의 질문 01

미국에 도착한 뒤의 삶을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답변 · 라울 부쏘

미국에 도착한 뒤 CATV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는 쿠바에서 배운 기술을 살려 독립적으로 텔레비전 기술자 일을 했고, 1999년부터 전화회사 AT&T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2

쿠바에서의 삶은 어땠습니까?

답변 · 라울 부쏘

쿠바에서는 전자공학 분야에서 일했습니다. 그곳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했고 몇 년 동안 컴퓨터 기술 서비스 회사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에서 받는 급여만으로는 가족을 부양하기에 부족해, 각종 전자기기를 수리하는 개인 일을 병행해야 했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3

떠날 당시 쿠바의 상황은 어땠고, 이후 20년 동안 어떻게 변했습니까?

답변 · 라울 부쏘

우리가 떠날 당시 쿠바의 상황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소련이 해체된 뒤 쿠바로 들어오던 각종 물자가 크게 줄었고, 옷과 음식 등 모든 것이 부족했습니다. 돈의 문제라기보다 물건 자체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고, 그것이 우리가 떠난 주된 이유였습니다. 이후 달러 소지가 비범죄화되고 미국 거주자들이 쿠바로 송금할 수 있게 되면서 상황이 조금 나아졌지만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여전히 미래와 기회가 부족했고, 개인의 발전을 허용하지 않는 억압적인 체제 아래의 삶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4

쿠바를 떠나 미국으로 가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답변 · 라울 부쏘

경제 상황과 정치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저처럼 개인적으로 일해 조금 더 많은 돈이나 물건을 얻는 사람들은 이른바 '불법적 부의 축적'이라는 이유로 자주 단속과 처벌의 대상이 됐습니다. 석유 부족으로 정전도 잦아 전자기기 수리 일을 할 수 없었고, 두 아들에게 먹을 것과 옷, 신발을 마련하는 일도 매우 어려웠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가족과 함께 섬을 떠나기로 한 결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5

구조 당시의 심정과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까?

답변 · 라울 부쏘

미국 해안경비대에 구조된 것이 그 순간 가장 중요했습니다. 바다에서 닷새 동안 표류한 뒤 우리는 마침내 구조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어깨에서 큰 짐을 내려놓은 듯했고, 우리가 가야 한다고 믿었던 곳에 실제로 도착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바다에서 겪은 우리의 긴 여정의 끝이었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6

미국에 이주한 뒤 삶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답변 · 라울 부쏘

미국에 도착한 뒤 제 삶은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영어를 배웠고 근무 조건을 개선했으며 좋은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가 이 나라로 온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제 삶은 눈에 띄게 달라졌고 크게 나아졌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7

한국에서 김홍록 작가가 당시의 경험을 전시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답변 · 라울 부쏘

다른 나라의 누군가가 시간을 들여 이런 경험을 알리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쿠바와 비슷한 체제 아래에서 고통받으며 나라를 떠나 삶을 발전시키고 다른 체제에서 살아갈 생각을 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진다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진국의 전혀 다른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뻤습니다. 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쿠바인들에게만 관심의 대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8

탈출하던 당시의 자신에게 지금 한마디를 할 수 있다면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답변 · 라울 부쏘

다시 해낼 용기를 제 자신에게 주고 싶습니다. 미국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제 삶에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더 나은 방식으로 해낼 수 있도록 사전에 조금 더 알아보라고 제 자신에게 말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저는 같은 결정을 내리고 다시 시도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미래가 없는 나라에서 탈출하려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부쏘 가족의 어머니

로사 빌라-부쏘 Rosa Villa-Bussot

2013년 인터뷰 당시 · 48세 ·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웨스트 켄들(West Kendall) · Neuroscience Consultants의 MRI 기술자

작가 김홍록의 질문 01

미국에 도착한 뒤의 삶을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답변 · 로사 빌라-부쏘

어린 두 아이와 함께 미국에 도착해 처음에는 아주 작은 아버지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이후 좀 더 크고 편안한 집을 임대했고, 아이들은 여름 캠프에 다니기 시작했으며 남편과 저도 일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밤에 8개월짜리 영어 과정을 들었고, 공부하던 학교에서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영어 실력을 조금씩 높이며 직장을 옮겼고, 아이들이 조금 더 자란 뒤 다시 영어를 공부했습니다. 이후 2년 과정의 방사선학을 공부해 X선 촬영 업무를 시작했고, 병원에서 MRI 촬영을 배워 인터뷰 당시까지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2

쿠바에서의 삶은 어땠습니까?

답변 · 로사 빌라-부쏘

전자공학과 컴퓨터 하드웨어를 공부했고 컴퓨터 수리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남편도 같은 학교를 나와 같은 직장에서 일했고, 그곳에서 만나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가족의 책임과 의무가 커질수록 생활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살던 공간이 너무 좁아 아이들이 태어난 뒤에는 좀 더 편하게 살기 위해 집을 넓히는 공사도 시작해야 했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3

언제 처음 쿠바를 떠날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은 어떻게 발전했습니까?

답변 · 로사 빌라-부쏘

1993년 쿠바의 상황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당시 세 살과 네 살인 두 아이가 있었고 삶은 갈수록 더 힘들고 복잡해졌습니다. 삶은 기본적으로 생존의 문제였고, 어떤 포부나 계획을 갖기도 어려웠습니다. 얼마나 일하고 무엇을 원하든 삶은 당시 체제가 정한 방식에 전적으로 좌우됐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4

쿠바를 떠나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답변 · 로사 빌라-부쏘

단순히 경제적인 필요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매일 생존하려 애쓰는 고통을 이겨 내고, 목표를 세워 무언가를 이루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계획을 세우기 어려웠고,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대로 남아 식물처럼 살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계획하고 결정할 수 있는 더 나은 미래를 찾아 떠날 것인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5

예상보다 항해가 길어졌을 때 심정과 상황은 어땠습니까?

답변 · 로사 빌라-부쏘

미국까지 갈 것으로 예상했던 연료가 훨씬 일찍 떨어져 표류하게 됐습니다. 약 14시간이면 도착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미국 해안에서 얼마나 가깝거나 먼지 알 수 없었고 쿠바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걸프 해류 때문에 노를 젓기도 어려워 한때 쿠바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더 나은 곳을 약속받았던 어린 두 아이가 돌아가는 데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떠났으니 아이들을 위해 계속 가기로 결정했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6

뗏목에는 어떤 물품을 준비했고, 무엇을 사용했습니까?

답변 · 로사 빌라-부쏘

아이들을 위한 액상 우유와 연유, 초콜릿, 통조림 스팸, 설탕과 물을 가져갔습니다. 햇볕과 추위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할 옷, 스웨터, 후드 달린 재킷, 수건도 준비했습니다. 나침반과 직접 만든 구명조끼도 있었고, 아이들이 멀미할 때 쓸 알약과 주사약도 챙겼습니다. 막내 알렉스는 자주 멀미했고 약효가 약 6시간 지나면 다시 증상이 생겼습니다. 나중에는 알약을 거부해 제가 주사를 놓아야 했습니다. 가져간 물품은 실제로 모두 사용했고 큰 도움이 됐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7

구조 당시의 심정과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까?

답변 · 로사 빌라-부쏘

배가 보일 때마다 주의를 끌기 위해 '아이들이 있어요!'라고 외쳤습니다. 아이들도 그 말을 따라 외쳤습니다. 구조된 뒤 라울 주니어가 이곳에서도 전기가 끊기느냐고 물은 일도 기억합니다. 쿠바에서는 만화가 방송되는 시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만화를 못 보는 일이 잦았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의 뜻을 설명하자 구조대원들은 미국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며 웃었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8

한국에서 김홍록 작가가 당시의 경험을 전시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답변 · 로사 빌라-부쏘

처음에는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이후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권의 사람이 우리가 겪은 일에 관심을 보인다는 데 큰 기쁨과 감탄을 느꼈습니다. 북한도 우리가 겪은 것과 비슷한 억압과 제약, 문제를 겪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이런 현실을 걱정하고 자신들의 현실뿐 아니라 우리와 같은 다른 나라의 현실도 보여 주려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9

탈출의 두려움을 견디게 한 가장 큰 힘은 무엇이었습니까?

답변 · 로사 빌라-부쏘

아이들에게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미래,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10

탈출하던 당시의 자신에게 지금 한마디를 할 수 있다면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답변 · 로사 빌라-부쏘

더 일찍 했어야 했고, 필요하다면 다시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결정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당시 세웠던 계획과 떠난 이유에 해당하는 목표들을 이룰 수 있었고, 다시 해야 한다면 다시 할 것입니다.

부쏘 가족의 큰아들 · 2013년 전시 참여자

라울 부쏘 주니어 Raul Bussot Jr.

2013년 인터뷰 당시 · 24세 · 대한민국 서울

작가 김홍록의 질문 01

미국에 도착한 뒤의 삶을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답변 · 라울 부쏘 주니어

미국에 도착한 뒤 새집으로 이사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녔습니다. 다시 이사한 뒤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그 경험은 매우 좋았습니다. 이후 뉴욕 브루클린의 대학에 다니며 다양한 인상적인 사람들을 만났고, 대학을 마친 뒤 서울로 오기로 결심했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2

쿠바에서의 삶은 어땠습니까?

답변 · 라울 부쏘 주니어

쿠바를 떠날 때 다섯 살이어서 기억이 많지는 않습니다. 부모님 말씀으로는 저는 조용한 아이였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친구들, 동생, 가까운 이웃 아이들과 길에서 놀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시 쿠바에서는 눈앞에 있는 일상적인 것들 외에는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3

다섯 살 당시의 항해와 쿠바에 관해 무엇을 기억합니까?

답변 · 라울 부쏘 주니어

그때의 기억은 연속된 이야기라기보다 사진이나 꿈 같은 몇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뗏목은 바다 한가운데가 아니라 바닷가의 작은 맹그로브 숲에서 밤에 조립됐습니다. 어둡고 축축했던 느낌, 뗏목을 물가로 옮기던 일, 모래 대신 제법 큰 돌이 있던 해변에서 누군가 미끄러진 일, 휘발유 냄새와 쿠바를 떠날 때 모터에서 난 연기가 기억납니다. 바다에서는 개가 뗏목에서 뛰어내린 일과 폭풍도 기억합니다. 바람과 비 속에서 뗏목이 오르내렸고, 프란시스코가 저를 붙잡아 주었습니다. 바다로 튕겨 나가지 않도록 몸을 뗏목에 묶고 방수포나 수건으로 몸을 덮었습니다. 그날 밤의 추위도 기억하지만 항해 전체를 기억하는 것은 아닙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4

어떤 계기로 김홍록 작가와 이 전시를 하게 됐습니까?

답변 · 라울 부쏘 주니어

늘 가족이 쿠바를 떠난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부모님께 직접 자세히 들려 달라고 부탁한 적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모두 더 바빠지고 서로 멀리 떨어져 살게 되어 이야기는 점차 뒤로 밀려났습니다. 김홍록 작가를 만나 제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는 곧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 둘은 그 이야기가 보여 줄 가치가 있고 다시 전할 가치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그가 예술과 동시대 사람들이 살아가는 상황을 예리하게 감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로 참여했습니다. 이 작품이 쿠바 탈출이라는 강렬한 이야기를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볼 기회도 주기를 바랐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5

그 경험은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답변 · 라울 부쏘 주니어

제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안다는 사실은 제 삶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다섯 살 때 가족과 함께 기회와 희망이 거의 없던 쿠바를 떠난 일은 우리에게 스스로 삶을 만들어 갈 기회를 주었고, 제가 하는 모든 일을 판단하는 하나의 관점과 기준이 됐습니다. 부모님이 우리의 삶과 미래를 걸고 쿠바를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 이곳에 있지도, 이 전시를 만들지도, 제가 이룬 일들을 이루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 멀리 나아가고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저 자신과 부모님께 진 빚과도 같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6

이 전시를 통해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습니까?

답변 · 라울 부쏘 주니어

가장 먼저 전하고 싶은 것은 희망입니다. 쿠바나 북한과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그곳을 벗어나 더 나은 환경에서 자신의 삶을 만들고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는 희망입니다. 동시에 현대사회에서 일상의 어려움 외에는 생사를 건 큰 시련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도 제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닷새 동안 뗏목으로 공산주의 국가를 벗어나며 살 수 있을지조차 몰랐던 경험은 평생 남습니다. 이 이야기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기 삶을 더 낫게 만드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7

쿠바인과 한국인은 어떤 점이 닮았고 어떤 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까?

답변 · 라울 부쏘 주니어

서울에서 1년 넘게 살며 한국 사람들을 지켜볼 시간이 많았습니다. 저는 삶의 대부분을 쿠바계 주민이 많은 마이애미에서 보냈습니다. 한국인과 쿠바인 모두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과 따뜻함이 강하다고 느꼈습니다. 친구를 형제자매처럼 대하고, 처음 소개받은 사람도 곧 가족처럼 받아들이며, 낯선 손님에게도 가진 것을 내어 주려는 모습이 비슷합니다. 두 문화와 사회는 다르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많은 유사점을 느꼈습니다. 한국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훌륭한 경험을 했으며, 쿠바를 떠난 일이 제 삶을 바꾼 것처럼 한국에서의 경험도 제 삶을 바꾸었습니다. 한국이 제 삶에 긍정적인 흔적을 남긴 것처럼 저도 한국에 긍정적인 흔적을 남기고 싶습니다.

부쏘 가족의 작은아들 · 알렉스

알레한드로 부쏘 Alejandro Bussot

2013년 인터뷰 당시 · 23세 ·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 간호학 전공 학생; 때때로 모델 일

작가 김홍록의 질문 01

미국에 도착한 뒤의 삶을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답변 · 알레한드로 부쏘

미국에 도착한 뒤 제가 바라던 것들을 누릴 수 있었고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지 못한 경험을 했고 매우 좋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2

쿠바에서의 삶은 어땠습니까?

답변 · 알레한드로 부쏘

부모님께 들은 바로는 옷과 음식처럼 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형과 저는 아주 어렸고, 아이들이 바라는 것은 텔레비전으로 만화를 보거나 노는 일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주로 밖에서 놀았고, 쿠바에서는 즐길 만한 것이 거의 없어 단순한 놀이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3

당시의 기억이 있습니까? 그 경험은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답변 · 알레한드로 부쏘

쿠바에 관한 기억은 거의 없지만 뗏목 항해에서 한 장면은 남아 있습니다. 셋째 날 밤 바다 한가운데서 거센 폭풍을 만났고, 모든 것이 캄캄할 때 번개가 바다를 내리쳐 주위를 환하게 밝혔습니다. 그 순간 뗏목 위에 서 있던 아버지, 또는 아버지의 실루엣을 본 기억이 납니다. 제가 쿠바에서 자랐다면 삶이 어떻게 됐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미국에 온 덕분에 원하는 공부를 하고 제약 없이 살 기회를 얻었습니다. 부모님이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오며 주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런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4

주변 사람들에게 쿠바 탈출 경험을 자주 이야기합니까?

답변 · 알레한드로 부쏘

누군가 제 삶에서 가장 흥미로운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뗏목 여행과 그 일로 제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5

형이 한국에서 김홍록 작가와 당시의 경험을 전시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답변 · 알레한드로 부쏘

매우 기뻤습니다. 세상에는 다루기 힘든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고, 쿠바와 북한 같은 군사적 체제 아래에서 매우 어렵게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그런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언젠가 이 전시를 접해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희망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6

쿠바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답변 · 알레한드로 부쏘

쿠바는 제가 태어난 나라이며, 제 국적은 쿠바입니다. 쿠바는 여러 사안을 바라보는 제 관점 등 삶의 많은 부분을 형성합니다. 쿠바에서 미국으로 온 경험은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은 사람들보다 세상을 더 열린 시각으로 보게 했고, 쿠바인이라는 정체성도 제게 세상을 넓게 바라볼 기회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7

쿠바를 다시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답변 · 알레한드로 부쏘

언제든 다시 방문하고 싶습니다. 아직 가족이 살고 있고, 전에도 방문해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내며 쿠바를 둘러본 적이 있습니다. 특히 건축과 자동차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1951년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느낌이었고, 1950년대의 건물과 건축, 생활환경이 여전히 남아 있는 모습이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사는 곳과 매우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방문하는 일이 흥미롭습니다.

뗏목 제작자 · 항해 동행자

호르헤 아스코네기 Jorge Azconegui

2013년 인터뷰 당시 · 53세 ·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West-Chester(문서 표기) · 자영업 전기기사; 본인 회사 소유주

작가 김홍록의 질문 01

미국에 도착한 뒤의 삶을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답변 · 호르헤 아스코네기

삶이 밤에서 낮으로 바뀐 것처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쿠바에서는 스스로 발전하기 어려웠고 공식적으로 정부를 위해 일해야 했습니다. 정부에서 일하지 않으면 이른바 '위험성법'에 따라 위험인물로 규정돼 아무런 이유 없이 최고 4년까지 수감될 수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미국에서는 제 사업을 하며 그런 문제 없이 살 수 있었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2

쿠바에서의 삶은 어땠습니까?

답변 · 호르헤 아스코네기

함께 뗏목을 탄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오늘 무엇을 먹을지, 오늘과 내일 먹을 것을 어떻게 구할지 생각했습니다. 쿠바에서의 삶은 기본적으로 먹을 것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3

쿠바를 떠나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답변 · 호르헤 아스코네기

사회주의 체제가 숨을 막히게 했습니다. 쿠바에서 미래를 바라보면 미래도 현재도 없고, 살아갈 이유나 애써 싸울 만한 것도 없다고 느꼈습니다. 매일 똑같이 생존만 반복하는 삶이었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4

항해에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과 가장 큰 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답변 · 호르헤 아스코네기

목숨을 거는 여정이라 어려운 순간이 많았지만, 저는 우리가 도착할 것이라는 내적인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기억상 월요일 새벽 무렵 바다가 거칠어진 6~8시간이었습니다. 파도 높이는 약 8~15피트였고, 한랭전선과 약 30노트로 추정되는 강풍 속에서 파도가 거칠게 몰아쳐 뗏목이 계속 위아래로 움직였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5

미국에서의 삶은 어떻게 발전했습니까?

답변 · 호르헤 아스코네기

밤과 낮처럼 다릅니다. 미국은 기회의 나라이고, 더 준비하고 노력할수록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회 안에서 한 사람으로서 여러 면에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매우 행복합니다. 쿠바에서 더 오랜 세월을 살았지만, 미국에서 겪고 누린 정서적 경험과 삶의 경험이 훨씬 더 풍부하고 좋았다고 느낍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6

뗏목을 비밀리에 만들고 바다까지 옮긴 과정을 설명해 주세요.

답변 · 호르헤 아스코네기

뗏목은 관개용 파이프로 만들었습니다. 시골에서 길이 약 15피트, 지름 약 8인치인 파이프를 구해 오토바이로 두 개씩 아바나까지 옮겼습니다. 파이프를 용접해 밀봉하고 쌍동선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제 집에서 제작했고, 완전히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할 수 있게 해 당국이 뗏목 운반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분해한 채 맹그로브 숲으로 가져가 다시 조립한 뒤, 아래에 자전거 바퀴 두 개를 달아 물가까지 굴려 옮겼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7

이전에 두 차례 실패한 이유와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답변 · 호르헤 아스코네기

라울 가족과 미국에 도착한 것은 제 세 번째 시도였습니다. 첫 번째에는 시도 중 붙잡혀 72시간 수감됐지만, 그 경험에서 배운 것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에는 붙잡히지 않았지만 뗏목이 가라앉기 시작해 되돌아와야 했습니다. 세 번째에는 앞선 경험을 바탕으로 가라앉지 않는 뗏목을 만들었고, 그 뗏목은 문제없이 모든 상황을 견뎌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8

구조 당시의 심정과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까?

답변 · 호르헤 아스코네기

구조되는 순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 모든 나쁜 상황을 벗어나 배에 오르고, 그 순간부터 목숨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우리가 도착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해안경비대 배들이 온 순간 마침내 모든 의심이 끝났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9

한국에서 김홍록 작가가 당시의 경험을 전시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답변 · 호르헤 아스코네기

20년 전 우리가 겪은 일과 한국의 상황을 함께 생각하게 됐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대비는 미국과 쿠바의 대비와 비슷하다고 봤습니다. 쿠바는 자국 정부에 의해 내부적으로 막혀 경제적으로 발전하지 못했고, 북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두 체제를 비교하고 인간의 잠재력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체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제 견해로는 자본주의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자유와 인간의 잠재력 발전 면에서 사회주의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10

탈출하던 당시의 자신에게 지금 한마디를 할 수 있다면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답변 · 호르헤 아스코네기

지금 20년을 살아 본 뒤 과거의 저에게 말할 수 있다면 '다시 떠나야 한다', '계속 떠나야 한다', '반드시 도착해야 한다'고 말하며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더 주겠습니다.

뗏목 제작자 · 항해 동행자

프란시스코 투에로 Francisco Tuero

2013년 인터뷰 당시 · 42세 · 미국 플로리다주 젠슨비치(Jensen Beach) · 통신회사 기술자; 텔레비전·인터넷·전화 설치(경력 답변에는 AT&T로 명시)

작가 김홍록의 질문 01

미국에 도착한 뒤의 삶을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답변 · 프란시스코 투에로

처음에는 이곳 생활에 적응해야 해서 더디게 시작했지만 이후에는 모든 일이 풀려 갔습니다. 미국에 도착해 건설 현장에서 목수로 일했고, 이후 트럭 운전과 배달 일을 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로 이사해 약 1년 반 동안 에어컨 기술자로 일한 뒤 플로리다로 돌아와 다시 트럭을 운전했습니다. 그 일을 그만둔 뒤 AT&T 기술자로 취업했고 인터뷰 당시에도 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2

쿠바에서의 삶은 어땠습니까?

답변 · 프란시스코 투에로

어릴 때부터 다른 삶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쿠바에서의 삶은 억압 속에 있었고, 미래 없이 가능한 방법을 찾아 생계를 이어 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 함께 항해한 호르헤를 만나 이곳으로 오기 위한 뗏목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3

뗏목 제작에서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답변 · 프란시스코 투에로

뗏목의 약 80%는 조지와 제가 만들었고, 마지막 단계에 라울이 합류했습니다. 처음에는 조지와 함께 정부 소유 관개지에서 파이프를 구해 조지의 오토바이로 산토수아레스(Santo Suarez)에 있는 조지의 집까지 옮겼습니다. 조지의 집 지붕에서 뗏목을 거의 다 만든 뒤 라울과 연락이 닿아 함께 완성했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4

뗏목이 발견되고 미국으로 옮겨질 때까지의 과정을 설명해 주세요.

답변 · 프란시스코 투에로

나흘 동안 바다에 떠 있던 어느 밤 수평선에서 불빛을 보고 해안이라고 생각해 노를 젓기 시작했습니다. 약 15분씩 교대했고, 새벽 1~3시 무렵부터 다음 날 오후 1시경까지 계속 저었습니다. 그때 어선의 어부들이 우리를 발견했습니다. 어선이 다가오자 롬멜이라는 개가 다른 배로 가려는 듯 물에 뛰어들었지만 다시 뗏목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어 마이애미의 큰 해안경비정, 웨스트팜비치 경비정과 헬리콥터가 왔습니다. 우리는 해안에서 약 30마일 떨어진 곳에서 웨스트팜비치 경비정에 옮겨 탄 뒤 웨스트팜비치 이민국으로 이송됐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5

구조 당시의 심정과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까?

답변 · 프란시스코 투에로

늘 떠오르는 기억이 두세 가지 있습니다. 개가 물에 뛰어들었을 때 다시 돌아올지 알 수 없었지만 결국 돌아왔고 우리가 개를 다시 건져 올렸습니다. 또 해안경비정에 오르려 할 때 군사시설에서 구해 온 나침반을 라울이 바다에 던졌습니다. 대원들이 무엇을 던졌느냐고 묻자, 바다에서 누군가에게 발견되면 나침반을 바다에 던지기로 약속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6

쿠바를 떠나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답변 · 프란시스코 투에로

쿠바의 억압과 미래가 없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삶이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열세 살이나 열네 살 무렵부터 늘 더 나은 미래를 찾고 가족을 더 나은 환경에서 살게 할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모든 쿠바인이 같은 생각을 한다고 믿었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7

한국에서 김홍록 작가가 당시의 경험을 전시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답변 · 프란시스코 투에로

라울이 우리가 쿠바와 카스트로 정권을 떠난 일을 다룬 전시를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뻤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든 누군가가 체제를 떠나고 억압에서 탈출하는 것이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세상에 보여 주려 한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작가 김홍록의 질문 08

탈출하던 당시의 자신에게 지금 한마디를 할 수 있다면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답변 · 프란시스코 투에로

우리의 탈출은 쉽지 않았고 라울과 알레한드로라는 어린아이 둘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도 과거로 돌아가 말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같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겠습니다.

전시 전경